濟 雲 堂 2007. 11. 21. 00:16

 

흔적, 우리의 삶의 근저를 발견하는 것에 아직도 마음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더 멀리 가야 하는구나 라는 걸 느낀다

배움이 쌓는 것이라면, 책이든 지식이든 소통구조와 관련된 일체를

경험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함도 있지만 물리적인 시간들이

접목 되지 않는 현실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물리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내적으로 다가서는

배움의 최고선은 끊임없이 비워낼 줄 알아야 한다는 정의가

교묘하게 평행선을 그려대고 있다

 

집은 너무 오랜 세월을 서서만 살아 왔다

누울 자리를 비로소 찾았는지

세워져 있던 집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텅 비어 있었다

 

건축의 초식도 그려낼 줄 모르면서

눈에 들어오는 이면의 흔적들이

켜켜로 분석되는 이 아찔한 순간

선무당처럼 주문을 끄집어 올리면서 뭔가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발 길을 멈춘다

흙집이다.

그런데, 벽면을 바른 흙에는 수 십년 전에 소출하고 남은 볏가리를

작두로 써억 썩 썰어서 반죽을 한 날카로운 단면의 흔적이

삐죽삐죽 퉁겨나와 있었다

오래된 집 축조 방식이긴 하나 우리네 전통적인 공법과는

조금 상이한 면이 보인다

대나무를 네 등분해서 쪼개 격자형태로 덧대기한 것이나

새끼를 가늘게 꽈 이어 붙인 형식들이

일본 전통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집인 것이다

아, 그렇지

이 일대는 일본인 거류지였었다

옛 지도를 살펴 보건데 이 집 부근에는 조선매일 신보사 건물이 있었다

1885년 인천 최초의 신문이라고 떠벌리던 그 곳 말이지

 

집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세월은 시대와 문화를 부침해 가며 자란다는 것을 새삼 느끼듯

가웃자리에 최근의 세멘트 벽돌이 창백하다 못해

이질감이 느껴지는 속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온 터전에는

문화와 역사와 기교가 혼재돼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허물어낸 집은 그래도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곳곳에 도배 대용의 초벌지를 붙인 면면마다

당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추정컨데, 궁성요배라는 단어

국민봉축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로 보아

1940년 전후로 신사 참배를 강요 했던 시기로 짐작되는

신문지가 뭔가에 짓눌린 채 삭아버린 모습으로

한 길 높이 벽면에 붙어 있었다

사진기의 줌 기능이 2%부족했다

실 내용을 좀 더 관찰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경기판이라는 제호 안을 등고선처리  한 것이나

큰 글자의 밑줄선을 겹으로 그려 넣은 기교

게다가 깔끔한 도판을 보고 추정했을 때

해방 전에 발간된 일본어판 신문 임에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느 신문인지는 아직도 불투명한 채 말이다

 

집은 우주적이다

무량한 우주의 시각에서

집은 먼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집을 숭배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숭배의 본질은 먼지로 돌아가려는 데에 있다

그 먼지를 채우는 대천은 존재의 부피를 측정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폐허를 돌아 다닌다

그 속에서 작은 차이를 찾아내

좋아라 낄낄거린다

아직은 배울 게 너무 많아서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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