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사람들
작은 종이 상자로 포장된 <대구新택리지>를 받아 들었다
검은 뿔테 안경 속에 빤작거리는 두 눈 만 보이는 권상구 국장의 손은
'대구 재발견' '걷는 즐거움'이란 표지의 말풍선이 주는 의미처럼
거칠다. 그냥 거친 게 아니라 단련된 '굳은 살'로 거칠다
아마 발바닥도 굳은 살 투성일 게다.
그런 살과 땀으로 빚어낸 <대구新택리지>를 넙죽 받아들었다.
둔중하다. 대뜸 읽기 버겁다는 생각이 첫눈에 들어온다
윤곽만 훑어 보는데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570여 쪽이 넘는 내용을 핥는 데에만 그렇게 지났다는 얘기다.
혓바닥이 얼얼하다. 아직도
대구의 독특한 사투리를 뭐라고 특징 잡기에 딱히 설명이 필요없었다.
이미 팔 십년 대에 강원도 홍천 모 부대에서 충분히 겪었으므로
자근거리듯 씹이는, 질감있는 말투의 '황야의 6인'을 만났다
영남일보 이지용 기자와 대구거리문화시민연대 권상구 국장이다.
인천 자유공원(만국공원) 정상 부근 '파랑돌'카페에서 걷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이 카페의 대빵으로부터 문화예술과 삶의 편린들을 귀동냥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타 오케스트라' 대빵 지휘자인 '리여석' 선생의 말씀을 듣고 있다. 인천 지역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얻은 찰라 같은 순간이었으므로
귀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하긴 수 십년 동안 제각각의 삶 속에서 언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겠는가. 알고 있어도 못 만나고, 몰라서 못 만나고...
인류가 수 십억을 웃돌지만 정작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몇 사람에 불과하기에 '사람의 만남'은 꽤나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6ㅇ여년 동안 기타를 쓸어낸, 손은 보이지 않지만 눈 빛 하나만으로도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거침없이 토해낼 것 같은 '리여석' 선생의 모습을
이효설 기자와 경북대 미대 류재하 교수가 경청하고 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맷돌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렇게 단적으로 말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대구라는 도시에서 솎아냈던 대구의 성징들을
풀어낼 대안으로 인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전반적인 문제점들은 대동소이했다.
대구도 인천과 별 반 큰 차이점은 없었다
도시공동화 문제, 문화예술로 엮는 삶의 질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 등등
그러나 이들 문제점의 대장막은 신자본주의 내지는 인본주의의 상실이었다
뭐, 거창하게 얘기할 것도 없이
살 맛나지 않다는 얘기다.
이 번 모임에 친구 노 회장을 초빙했다
몇 개의 호텔 경영과 도시문제를 슬기롭게 생각하는 CEO이다.
걷는 게 익숙치 않을 것 같은 이 친구와 반나절을 걷는다는 건
나로서도 드문 일이지만 이 친구로서도 오랜만에 걷는 일이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끄집어내는 말들에 무게감이 든다. CEO답다.
그 옆 자리에 박 선생의 열성적인 대담에 귀 기우리는 듯
일 박 이 일에 걸친 인천탐사가 어느덧 갈무리 될 무렵
경북대 건축과 이정호 교수와 미대 류재하 교수 두 분과
함께 길거리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헤어짐이 좀 아쉬운 시간이다.
미리 준비해간 약식을 이정호 교수가 맛나게 드신다
이 사진을 보고 느낀 점은,
나도 세월 앞에서는 별 수 없구나...와, 여전히 총각인 류재하 교수 그리고
칼날 같지만 맘이 뜨끈뜨끈한 이 교수.
길 거리 아무데나 냅둬도 잘 버텨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속내를 다시 밝혀보면, 이렇게 현장 바닥을 기어다니듯 다녀봐야
현실감 있는 강의가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참, 잊을까봐 다른 두 분을 올려보면
안경이 그럴 듯해 보이는 김원구 연구원과
친구를 보좌했던 박석원 지배인을 빠뜨릴 수 없다
비록 많은 대화 참여는 못했지만 분명 이 두 분도 많은 경험과
축약된 현실에 대해서 느낀점이 있었으리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일행을 배웅하면서
남는 것은 대구까지 잘 가야 할 텐데라는 기원과
연대감의 지속성 그리고
왠지 모를 외톨박이에 대한 감성이 복받쳐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