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일기

설날

濟 雲 堂 2007. 9. 9. 22:25
 

-설날 큰 형님의 전화를 받다-


부재하신 아버지의 공백을 채우자고

딱 일 년만 방앗간 일을 하자고

했는데, 벌써 십 팔년이 흘렀다.


천주교 박해 치명자 자손인 여섯 형제 가운데

꼭 한 사람은 신부가 돼야 한다는

잔소리 같은 그 말씀이 끊어진지도

어언 십 팔년이 흘러버렸다.

큰 형님이 수단을 입고 계실 때까지

그런 말씀은 없었지만

옷을 벗은, 초등학교 사 학년 때부터

지금으로부터 십 팔년 전까지

잇니 박히도록 듣고 지내왔었다.


설 대목을 끝내고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이부자리에 누웠다

딴딴하게 굳어버린 어깨

퉁퉁 부른 종아리의 연혁도 십 팔년 째가 된다.

딱 일 년만 하자 해놓고서

몸 저 누워버린 채 십 팔년 간

마누라 배역을 맡은 강철 같던 여인네의 뚝심은

이미 파김치가 돼버려 잠든 지 오래


다시 설날

큰 형님의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는 백석에서

어머니는 형님들이 살고 계시는

버지니아 주 어느 도심,

잔디로 잘 꾸며진 모 추모관에서

오늘도 여지없이 차례상을 받을 것이다.

십 팔년 동안 그렇게 지냈으므로,

앞으로도 우리 여섯 형제는

설날 아침마다

전화통을 부여잡고

서로의 빈 자리를 향하여

유고된 안부를 서럽게 채워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