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호텔 濱
회고와 전망이란 단어를 책상머리에 써 붙여놓고
얼마간 곰곰이 생각건대
지나간 일들 가운데는 곧추세울 것과
구부려야 할 것 또는 그냥 내버려 둬도 좋을상 싶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순식간에 오버랩 되면서 그 잔상들이
비듬 조각처럼 책상 위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재 개발지에서 주워온 앉은뱅이 교자상이
새 주인에게 말한다.
그동안 나, 많이 버림 받았어요
이번 만큼은 당신을 위해 남은 평생 오롯이 책상 노릇 좀 하며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둬 줘요. 제발...적어도 이렇게 들리는 야심한 시각에
전망이라는 말보다는 회고라는 쪽이 더 살갑게 다가오고 있었다.
1920년대에 인천 월미도에 있었던 호텔을 판화로 만든
佐藤米次郞의 작품이다.
이 당시에 월미도는 전국 최고의 유원지 구실을 제대로? 구현해 만든
일본인을 위한 유원지였다. 실제로 보지 못했으니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아버지와 그 동년배들이 구술하는 일치된 말씀들은 대동소이한
내용들이었다.
처음에 목조로 만든 다리를 놓더니만
그 다음은 흙을 퍼 날라 제방을 쌓고 이러저러 하던 것이
십년 상간으로 버젓이 육지로 돼버리고만 월미도에 드디어
호텔이 들어섰다. 호텔이 들어섬과 동시에
풀장이 새로이 문을 열었고, 이어서 바닷물을 끌어와 뎁혀 만든 조탕을...
사람들이 들끓자 아이들을 위한 해변학교인 임해학교를 운영하였다 했다
어디 이 뿐인가? 사슴목장 동물원, 해태양식장, 무선전신소, 방공호 등등을
요 쬐그만 섬에 다 만들어 댔으니 그야말로 포화 상태였음이라
게다가 조선 사람 전용 해수욕장까지 갖추었으니
월미도는 오로지 일본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었던가
위 그림에 살펴지는 두 조선인 가시버시의 등장은 좀 낯설고
다분히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풀장 너머로 조탕과 호텔이 날 세운 채
금단의 땅 임을 과시하듯이 뾰족뾰족 패여 있는 게 어딘지 모르게
두렵기까지 한 판화작이다
대불호텔, 손탁호텔에 얽힌 얘기 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