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박팔양-
조선의 서편 항구 제물포부두
세관의 기는 바닷바람에 퍼덕거린다
잿빛 하늘, 푸른 물결, 조수 내음새
오오,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
모자 빼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발을 내릴 제,
축항 카페에로부터
술 취한 불란서 수병의 노래
"오! 말쎄이유! 말쎄이유!"
멀리 두고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
부두에 산같이 쌓인 짐을
이리저리 옮기는 노동자들
당신네 고향은 어데시오?
"우리는 경상도" "우리는 산동성 "
대답은 그것뿐으로 족하다.
월미도와 영종도 그 사이에
물결 헤치며 나가는 배의
높디높은 마스트 위로 부는 바람
공동환의 기빨이 저렇게 퍼덕거린다.
오오 제물포! 제물포!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조선지광. 1928. 7> 인천항 전문.
조선지광은 1922년에 발행한 잡지로 비교적 교과서?^^에 이름이 잘 나오지 않는 사회주의 경향을 펼친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만든 문학잡지다. 임화, 박도빈, 김기진, 박영희 등 프로 문학 또는 카프 문학적 색채를 가진 분들이 주로 작품을 많이 올렸으며, 이후에 유진오, 이효석 등이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 문단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추역할을 해왔다
박팔양 시인 또한 이러한 경향을 지녔던 작가군에 속한다 하겠다.
인천항의 적나라한 모습과 인천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를 보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글쎄? 평자의 논지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필자처럼 평생 인천의 바닷바람을
자양 삼아 흔들려 자라온 사람에게는 각별히 와 닿는 뭔가가 뚜렷이 존재하는 것 같다.